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불매운동은 '혁명'이다

간디는 1948년 1월 30일 총격에 암살당하기 전까지, 무지하고 무력하기만 했던 인도 인민에게 참여하는 시민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깨닫게 하는데 일생을 바친 위대한 혁명가이다.

간디는 젊은 시절을 유학으로 보냈고, 성인이 되어 돌아온 모국은 기아에 허덕이는 폐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쥐고있던 대영제국의 식민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시절에 남긴 영웅적 행적과 잘 나가는 저서들이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타협하며 저술활동에 매진했다면 편안한 삶이 보장될 수도 있었던 간디였다. 하지만 그는 지식 자랑은 할줄 알아도 행동엔 소극적인 일반적인 지식인 나부랭이들관 달랐다. 인민과 한몸이 되어 그들의 아픔을 나누고자 했고, 실천으로 그것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모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인민의 아픔을 살핀결과 영국에 빼앗긴 경제력을 인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독립의 지름길임을 깨달은 간디는 불매운동(시민의 불복종)을 결심하게된다. 소금, 식량, 섬유등 당시 생필품의 거의 대부분이 영국 자본의 독점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불매운동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불매운동이 가능하기 위해서 대체 상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디는 포기를 몰랐고, 급기야 해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영국제 섬유를 첫 불매운동 품목으로 정하고 자신이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 불에 태우며 모든 인민의 참여를 호소했다. 말에 앞서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지식인의 모습에 감화된 인도 인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잇따랐다. 인도 전역에서 영국제 의류와 침구가 불태워지고 그들이 직접만든 옷으로 대체해 나가는 참여의 물결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엄청난 시장에서 날로먹던 영국의 섬유공장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대영제국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세계최강의 군사력이 불매운동 앞에서는 허수아비와 다름없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간디의 비폭력 시민운동의 핵심인 동시에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최선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무지한 인민들에게 시민의 힘, 소비자의 힘을 실천에 옮기게 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민혁명가가 간디였던 것이다. 그것도 무려 70여년 전에 말이다. 무력으로 세상을 바꾸려했던 체 게바라와는 사뭇 다른 길을 갔던 것이다. 결국 민중의 힘을 믿은 간디는 단 한번의 주먹질도 없이 비폭력 시민혁명을 이뤄내는데 성공했고, 오직 참여의 힘만으로 독립까지 쟁취했던 것이다.

유난히 교육열이 남다른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학력이 높고 문맹률이 낮은 수준인데다, 간디의 '시민의 불복종'은 필독도서에 들만큼 많은 한국인들에게 읽히고 있다. 설령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간디와 인도 혁명사는 많은 매체를 통해 접하였기 때문에 모르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인도의 역사에서 단 한줄의 학습효과도 보지 못하는 저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도인보다 학력이 높고 문맹률이 낮으면 뭐하냔 말인거다. 민주주체의 참여가 핵심인 민주국가에서 단한번의 시민혁명(불매운동)을 실천해본 역사가 없다는 것은 실로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는 거다.

이렇게 개개인 스스로가 참여의 힘을 믿지 못하고 민초를 자처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가 말이다. 삼성이라는 국가대표 암세포가 모든 법치를 말아먹으며, 극악한 범죄를 반복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바라만 볼 수 밖에없는 무력증에 시달리고 있잖은가 말이다. 한국인들이 미개한 나라라고 깔보는 인도인들 조차 실증해 보인 참여 민주주의를 잘나빠진 한국인들은 단 한번도 실천해보지 못했다는 것에 우리는 부끄러워 할줄 알아야 할것이다.

문제란 문제로 인식했을때 해법이 나오게 마련이다. 법치마저 삼성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했다. 왜 그렇겠는가? 삼성의 무소불위 권력은 자본의 힘이다. 그럼 기업의 자본은 어디에서 축적되는가? 소비자들의 소비로 축적되는거다. 그러나 삼성은 한국인들이 재력을 보태줄수록 극악무도한 대국민 범죄로 화답해 왔다. 즉 삼성은 어제도 오늘도 노골적인 대국민 범죄를 싸지르고 있고, 삼성 소비자들이 축적해준 재력으로 법치를 무력화하며 면죄부를 취득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쯤되니 삼성 소비질이 결국 범죄 자금원과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상습범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말 그대로 재범 우려가 높은 범죄자여서 일정기간 감시를 요하는 자를 일컫는 말이다. 삼성은 상습범임을 우리는 안다. 결국 삼성 소비자 새퀴들은 연쇄 살인범에게 잘드는 식칼을 구입할 자금을 대주는 방조범과 다를게 없다는 말인거다.

이렇듯 법치 살인마 삼성을 방조하는 주제에 선진국을 꿈꾸는 한국인들은 방구석에 드러누워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히말라야 정상 정복을 바라는 도둑놈 근성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자본주의 맹점을 극복하는 불매운동과 같은 일상화된 시민참여가 뒤따라야만 선진국이 유지되고 자본주의가 유지된다는 기본상식 조차 실천하지 못하면서 무슨 얼어죽을 선진국이냔 말이다. 한국인들의 현재 모습은 그저 불평할 자격도 없는 혀짤린 애완견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거다.


용산 살인진압을 싸지른 이명박 정권을 심판할 기회는 단 한번 뿐이지만, 배후질을 싸지른 삼성을 응징하는 건 1년 365일 가능 하다는 것이 불매운동의 위력인 것이다.

신고

, , , , , , , , , ,